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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치리포트]

토트넘, 지공법을 얻었고 역습법을 잃다

몇 시간 후면 International Break로 중단된 프리미어리그가 재개됩니다. 그리고 이번 라운드의 주인공은 토트넘과 아스날의 더비 경기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아스날의 승리를 점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아스날의 경기력은 정말로 인상적입니다. 마치 잘 조련된 스페인식 축구가 톱니 바뀌처럼 정교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반면에 토트넘은 7경기에서 5승 2무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경기력 그 자체는 실망스러운 점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숫자나 데이터 보다, 최근 토트넘의 경기를 보면서 느낀 제 개인적인 소해를 가볍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6개월전, 토트넘의 가장 큰 문제는 지공 상황의 득점력이였다

지난 시즌 토트넘의 가장 큰 약점은 지공 상황에서 좀처럼 득점하지 못한다는 점이였습니다. 수비 라인을 올리고 공격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상위팀과는 상성이 좋은데 수비 라인을 내린 중하위권 클럽들에게는 자주 고전했습니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창의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를 영입하지 않겠냐고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콘테 감독의 최우선 보강 포지션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대신 이탈리아 출신 세트피스 코치 지아니 비오(69)를 영입했습니다. 팔레르모, AC밀란, 브렌트포드, 리즈유나이티드, 스팔, 갈리아리 등을 거쳐 최근 이탈리아 대표팀 세트피스 코치를 맡았던 세트피스 전술 전문가죠. 

 

콘테 감독과 비오 코치


지아니 비오 코치를 영입하면서 토트넘은 상대 진영 문전에서의 득점력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특히 짧은 코너킥으로 near post를 활용한 패턴 플레이,
패리시치를 통한 왼쪽에서 far post쪽 롱 크로스, 우측 하프 스페이스에서 이뤄지는 쿨루셉스키의 미들 크로스 활성화가 대표적인 '약속된 플레이'입니다. 토트넘이 지공 상황에서 득점을 만들어가는 솔루션 몇 가지를 장착했습니다. 덕분에 패배가 짙었던 경기를 무승부로, 무승부를 승리로 만드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했던 역공이 사라지고 있다

손흥민 선수는 지난 9월 레스터 시티전에서 역습 상황에서 두 골을 득점했습니다. 하지만 역습은 토트넘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레스터 시티전 역습을 제외하면 토트넘의 역습 시도나 성공은 현격히 적어졌습니다. 한편 이번 손흥민의 역습 성공을 두고 포매이션 변화를 언급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콘테 감독은 레스터 시티전 후반 70분이 넘어서 3-5-2로 포매이션을 변경하고 손흥민의 수비 위치를 좀 더 공격적인 위치로 변경했습니다. 물론 위치 조정이 손흥민 선수의 파괴력이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다만, 이 전환 상황은 호이비에가 공을 갖고 드리블한 상황이기 때문에 포매이션이 변화가 꼭 이런 변화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5-4-1 수비 상황이였다고 하더라도 손흥민 선수는 충분히 침투를 할 수 있는 위치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토트넘의 미드필더들이 공을 빼앗아 공격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중원에서의 패스와 조직력이 역공을 만들어내는데 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되었든 주제 무리뉴가 셋업한 손캐 듀오의 속공 패턴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역공 루트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지난 시즌 말미부터 토트넘의 역습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클럽들이 케인과 손흥민 선수에 대한 강력한 대인 압박을 구사하면서 애초에 역습 시도를 못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22/23 시즌 초반기도 그 기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토트넘은 강점을 잃고, 약점을 보완한 형국입니다. 토트넘은 강점을 살려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역습의 방법과 루트를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합니다. 즉 역습은 해리케인만이 연계하고, 손흥민 선수만이 득점할 필요가 없습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 패리시치로부터 히샬리송으로 연계되는 역공 루트가 있어야 합니다. 히샬리송은 역공이 가능한 선수입니다. 

- 쿨루셉스키로부터 손흥민 선수에게 연계되는 역습 루트가 되살아나야 합니다. 쿨루셉스키는 윙어 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를 보았을 정도로 패스 성공율이 뛰어나고 특히 15~30 yard의 미들 패스의 정확도가 뛰어난 선수입니다. 

- 호이비에와 벤탄클루로부터 시작해서 패리시치나와 쿨루셉스키를 거쳐, 손흥민 선수, 히샬리송, 해리캐인에게 전달되는 루타도 활발해져야 합니다. 한 마디로 역공 루트의 다변화가 필요합니다. 물론 결정력, 정교함에 있어서 손흥민 선수는 월등한 실력을 보이기 때문에 손흥민 선수가 마무리를 할 수 있는 루트가 key route이겠죠.  

역습에는 모두의 Role Play가 필요하다

루트를 다변화하기 위해서는 전 선수가 전환 상황 또는 빌드업 상황에서 각 위치에 맞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저는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역습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연계가 매우 뛰어난 두 선수가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브루노 페르난데스죠. 일단 이 선수들은 경기를 풀어나가는 시야와 실력이 대단히 뛰어나기 때문에 훨신 더 역습이 쉽게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콘테 감독은 이런 선수들의 영입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토트넘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역습 빌드업에 가담할 수 있는 포지션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윙백들과 미드필더들이 역습 상황으로 끌고 갈지, 지공으로 전개할 지에 대한 빠른 판단과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점이 되는 패리시치나 미드필더들이 기본적으로 역습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확실히 낮다고 느껴집니다. 

기민하고 정확한 빌드업 그리고 일관성이 필요하다 

토트넘의 역습을 전개하는 빌드업 정확도는 기복이 심합니다. 그래서 빌드업 퀄리티의 상향 평준화가 시급합니다. 상대의 전방 압박을 풀어내는 능력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이를 빠른 공격으로 가속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토트넘은 수비 중심적인 클럽입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시점에 폭발력이 필요한 클럽입니다. 콘테 부임후, 토트넘은 롱패스에 의한 빌드업 보다는, 매우 간결하고 빠른 빌드업을 시도했습니다. 올해 2월 토트넘과 맨체스터 시티전을 시청한 사람은 잘 기억할 것입니다. 토트넘의 선제골은 '벤데이비스 → 해리케인 → 손흥민 → 쿨루셉스키'로 거의 원터치로 연계된, 어떤 리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최고 수준의 빠르고 정확한 역습 빌드업이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토트넘의 역습 빌드업은 실수가 많습니다. 원터치 패스는 자주 실패하고 공을 상대에게 빼앗깁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공을 더 소유하고 지공으로 접근하는 시도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토트넘의 색깔이 희석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맺으면서...   

토트넘은 세트 피스 득점력을 보강하면서 승점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클럽이 되었습니다. 반면, 가장 큰 장점이였던 역습은 오히려 희석되었습니다. 역습은 반드시 케인과 손흥민 선수만으로 구성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의 강력한 1:1 대인 방어에 성공 가능성도 과거보다 낮아진 것도 사실이고요. 핵심은 루트를 다변화시키고 각자가 역습에 참여할 수 있는 role play가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의 빌드업의 퀄리티를 상향 평준화시켜야 합니다. 수준 높은 역습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토트넘은 더 이상 위협적인 클럽이 될 수 없습니다. 역습을 다시 살려내지 못하면 토트넘은 수비 중심의 경기에 세트 피스로만 득점을 시도하는 클럽일 뿐입니다. 

경기력 자체로는 아스날이 뛰어나지만, 토트넘이 견고한 수비와 폭발적인 역습을 잘 활용한다면 그 결과는 흥미로울 수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경기를 기대합니다.